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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핵 포기 국가들의 비참한 결과, 리비아, 우크라이나, 북한이 핵 포기 안 하는? 못하는 이유, 김정은의 생각은? 남한 박정희 또한 핵개발을 했었

by 탈락자 2021. 12. 12.

핵 포기 국가들의 비참한 결과, 리비아, 우크라이나, 북한이 핵 포기 안 하는? 못하는 이유, 김정은의 생각은? 남한 박정희 또한 핵개발을 했었다?

핵무기는 인류가 제어할 수 없는 힘이라는 의견, 혹은 그 이상의 파워를 가진 무엇인가, 국가 간의 힘 겨루기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 상상하던 무언가를 넘어선 힘입니다.

몇몇 강대국들과 선제적으로 핵에 투자한 국가들을 제외하곤 새로 핵개발을 감행하면 엄청난 비난과 제제를 받게 되죠. 아니 그럼 자기들 가지고 있는 것부터 좀 패기 하던지 뭔가 참 이해 안 되고 아이러니 한 핵무기..

넷 상의 유행글인 핵포기 국가들의 최후란 글을 한번 봅시다.


핵포기 국가들의 최후

리비아 그리고 카다피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무기가 없이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세계 질서라고 논평내리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한다.

미국은 곧바로 경제적 제재, 외교적 고립으로 리비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이후 카다피는 큰 결심을 하여 자발적으로 핵포기를 선언한다. 미국과 협상을 하여 선 비핵화, 후 관계 정상화로 합의하였다.

그렇게 미국에 나름의 자주권도 인정받고, 핵을 포기한 것이 아쉽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보면 협상을 한 것이 국익에 이로웠으니 카다피도 만족했으나...

훗날 리비아에서 민주화운동 아저씨들이 들고 일어나자 놀란 카다피는 진압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미국을 위시로 한 NATO군이눈 하나 깜짝 안 안하고 리비아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민주화운동 아저씨들을 돕는다는 도덕성을 명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민주주의 배달

기름만 나온다면 민주주의 배달부터 들어가는 미국 성님...

충격을 먹은 카다피는 핵포기를 했던 자신이 무엇을 했던 건가..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NATO군의 등에 업힌 민주화 반군에게 카다피는 체포되고 결국 총살된다.

그렇게 리비아가 평화로워지면 좋으려만, 사실 알고 보니 민주화운동 세력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었고 세속주의자 카다피가 사라지자 온갖 이슬람 세력의 활개 침으로 근래까지 여전히 리비아는 혼란스럽다.


핵포기 한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해체되고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안전보장과 권유로 '손쉽게 핵을 포기하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안심했다. 러시아는 이빨 빠진 호랑이였고 지금 최고의 슈퍼파워는 미국이니까.

미국이 지켜준다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그러나.. 훗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된다. 러시아는 다시 부흥하고 있었으니..

.... 파병은 어렵군
... 핵전쟁으로 터지면 위험하지요...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는 우크라이나는 영토가 강탈됐다.

경제적 제재한다고 러시아가 깨깽하긴 하는지 의구심을 품긴 했지만 그래도 서방국들을 믿었다. 크림반도는 요상한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는 그것조차 없으니까.

이번에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에 20만 군대를 집결시키면서 전면전을 준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우크라이나를 멸망시킬 의도를 가지고 침공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기에 우크라이나는 드디어 미국과 NATO의 도움을 받을 거 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토는 냉정, 미국도 뭐...

NATO: 우크라이나는 우리 회원국이 아니다.
미국: 러시아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 가할 것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 in connection with Ukraine's accession to the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비확산조약 가입과 관련한 안전보장에 대한 양해각서
Budapest 5 December 1994 부다페스트, 1994년 12월 5일

이런 건 큰 의미가 없어요...

지금도 우크라이나 접경에는 러시아 20만 명이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과연 핵을 가지고 있었어도 지금과 같을까?


핵정은

크흠...

+대한민국 또한 핵무기 개발 시도 역사가 있다.

박정희의 핵개발 시도

그러나 박정희는 그즈음 핵 개발 시도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 아닌가?
한국은 10년간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한국은 베트남전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얻은 외화로 새마을운동을 벌이는 등 경제 발전을 위한 '시드 머니'로 활용했다. 그러나 또 하나 베트남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공산화가 번져 한국도 위험하다고 봤던 것도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한 이유였다. 그런데 내가 1973년 한국에 왔을 그때,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박정희는 이걸 보면서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 그가 핵 개발에 나선 이유다.

핵 개발 시도가 당시 한-미 관계 악화의 주원인이었나?
물론이다. 박정희는 '나는 베트남에 30만 명을 보냈다. 그런데 미국을 믿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970년대 동북아시아에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국민들을 고문하는 나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그건 남한이다. 1970년대의 남한과 오늘날의 북한은 여러 점에서 흡사하다.

박정희가 핵 개발에 나선 시점이 언제인가?
대략 1972년이다.

미국이 곧바로 그 사실은 알았나?
아니다.

언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나?
1973년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나?
그건 말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그걸 멈추게 했다. 나는 본국에 한국의 핵 개발을 보고했고 미국 정부는 매우 조심스럽게 중단하도록 요구했다.

박정희를 어떻게 설득했나?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공격에도 남한을 보호할 것이며 따라서 남한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시켰다.


1970년대 당시 미 CIA 한국지부 총책임자, 1989~1993년 주한 미국 대사였던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와의 인터뷰 중에서


만약 당신이 김정은이라면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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